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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 환생록 4화

취미 생활(만화책.시간떼우기>

by 이쏘시게 2025. 3. 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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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내가 왜?

을사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작? 뱀 대가리?’

지금 누가 누구한테 저런 말을 지껄이는 건지.

천사방의 권세와 별개로 백사두검 굴마훈의 무위와 위상은 함부로 깎아내릴 만한 것이 절대 아니다.

특히 방주 직을 상징하는 독문 검학 백사밀행검(白蛇密行劍)은 동급 검수가 아니면 쉬이 맞서기 어려운 기예로 정평이 나 있다.

실지 굴마훈과 손속을 나눠 본 무인들은 늘 이렇게 감탄했다.

백사밀행검은 흰 뱀이 뾰족한 이를 드러낸 채 먹잇감을 휘감듯 쇄도하는 무서운 기세와 변화를 가진 검술이라고.

사공운도 몇 해 전에 그와 검을 섞고 나서 비슷한 말을 남긴 적이 있었다.

한데.

그처럼 실력이 출중한 검수를 가리켜 ‘고작 뱀 대가리’라 지껄이니 황당할 수밖에…….

비록 굴마훈의 무명이 한 지역에 국한되어 있다지만, 아직 제대로 된 별호조차 없는 후기지수 철류흔으로선 감히 넘볼 엄두도 내지 못할 대상이거늘.

‘허, 주제도 모르고 저딴 망발을…… 독환 복용으로 나타난 후유증인가?’

인성이 바뀐 것 같은 일련의 언행도 어쩌면 그 이유일까.

바로 그때.

콱, 콱, 콱, 콱―!

철류흔의 발바닥이 을사적의 정강이를 연거푸 찍어 눌렀다.

“으, 으아악! 으아아악!”

창고 안을 가득 메우는 비명.

한껏 일그러진 을사적의 면상이 그 지독한 고통을 대변한다.

“이건 맛보기.”

철류흔은 그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우수를 놀려 부분적인 해혈을 베풀었다.

상대가 두 팔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뒤이어.

“써.”

철류흔이 짤막한 말과 함께 종이를 내밀었다.

“끄…… 끅, 예?”

“자초지종을 상세히 적으라고.”

만약 거짓이 섞여 있을 시 나머지 뼈도 성치 않으리란 경고까지 숨어 있는 말.

질겁한 을사적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받아 들었다.

“저…… 그, 그런데 붓과 먹은 어디에…….”

“그딴 게 왜 필요하지?”

말이 끝나자마자 연거푸 날아드는 주먹.

퍽, 퍼퍽― 퍽―!

을사적의 안면은 순식간에 선혈로 범벅이 됐다.

“손가락은 뒀다가 뭐 해.”

“끄흐으…….”

신음을 흘리던 을사적은 이내 검지에 선혈을 묻혀 글씨를 써 나가기 시작했다.

슥, 스슥, 슥―

시간이 조금 흐르고.

고통을 감내하며 작성을 마친 을사적이 손을 떼자 철류흔은 즉시 서면의 내용을 확인했다.

“대사형, 맹세코 모든 것을 솔직하게 썼습니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제가 설마 진실을 감추겠습니까.”

“알아.”

철류흔의 심드렁한 대꾸.

사문을 배신한 이유를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을사적이 머리를 숙이며 거듭 호소했다.

“죄송합니다. 파문이든 뭐든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테니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네 목숨은 귀하고 내 목숨은 안 귀했나?”

“그, 그건 면목이 없습니다.”

“살고 싶으면 잠자코 처분이나 기다려.”

차갑게 명한 철류흔은 곧장 신형을 선회했다.

직후.

을사적의 피 맺힌 입가에 엷은 웃음기가 번졌다.

‘후, 역시 날 죽이진 않네. 물러터진 새끼 같으니…… 나도 마지막으로 믿는 구석 하나 정도는 남아 있다.’

그런데.

척.

갑자기 걸음을 멈칫한 철류흔이 고개를 돌리며 말하기를.

“가만, 손도 이제 필요 없지.”

“예?”

을사적은 일순 가슴이 철렁했다.

불길한 예감.

아니나 다를까 철류흔이 무심하게 한옆의 각목을 집어 들더니 그를 향해 세차게 휘둘렀다.

빠각― 빠가각―!

졸지에 양쪽 손뼈가 작살나고.

“끄아아아, 끄아아아아!”

을사적의 입에선 통성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그래도 철류흔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괜찮아. 뼈는 다시 붙어.”

대수롭지 않은 투로 이른 그는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 창고 문을 걸어 잠갔다.

덜커덕―

다시 어둑해진 공간.

겨우 비명을 삼킨 을사적은 잠시간 호흡을 고르다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쌍! 내 기필코 네놈이 뒈지는 꼴을 보고 말리라!’

* * *

백악검문 경내 북쪽에 있는 고풍스러운 옥사.

장방형 내실에 문중의 간부진 네 명이 탁자를 복판에 두고 모여 앉아 있었다.

앞서 철류흔이 창고로 가기 전 총감인 백섬검호 협무극을 따로 불러 회의 소집을 명한 까닭이다.

물론 의제는 을사적의 악행과 관련한 것이었다.

간부진 중 총감 협무극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무공 교육 과정을 담당하는 교두 직을 맡았다.

서른 초반인 그들은 본디 세쌍둥이 형제로 첫째가 구양천, 둘째가 구양지, 셋째가 구양인이었다.

정의로운 협객 같은 외양의 협무극과 달리 구양씨 삼 형제는 험악한 인상에 풍골이 괴위해 사파의 패악자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평소 품행은 정파에 걸맞게 그 누구보다 단정했다.

셋 다 아직 그럴싸한 별호는 얻지 못했으나 일신의 무공은 검풍, 검기 등을 능숙하게 다루는 수준이라 환경이 열악한 백악검문의 간부진으로서는 큰 손색이 없었다.

다들 말없이 철류흔의 등장을 기다리는 가운데.

협무극은 의자에 등을 파묻은 채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진정 날 신뢰한다면 그곳에 대해 더는 묻지 말도록 해. 뭐든 결과로 증명해 보일 테니까.

철류흔이 했던 말을 상기한 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탈태환골이라…… 다들 그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 궁금하군.’

아직 예의 안배와 관련한 것은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기실 철류흔의 허락이 있기 전까진 입을 굳게 다물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그 신뢰에 대한 보답이자 도리일 터.

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철류흔이 탈태환골에 성공하면 아무 걱정을 안 해도 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주요 실무를 관리, 감독하는 총감으로서 여러 가지 상황을 대비하고 또 고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문주님께서 그 기오막측한 안배를 괜히 양보하신 게 아니리라. 그저 소문주님의 잠재력이 폭발하길 기도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탈태환골의 주된 묘용인 육신 개조와 함께 내공 수위마저 급상승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설령 철류흔이 실패한다 해도 충심과 성심을 다해 보필하리라 다짐했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빈 상석의 주인 철류흔이 발을 들였다.

“어서 오십시오, 소문주님.”

신속히 신형을 일으켜 세운 협무극은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며 예를 갖췄다.

구양천, 구양지, 구양인 또한 같은 동작으로 예를 표하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소문주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가히 기적 같은 일입니다! 몸 상태는 좀 괜찮으십니까?”

“일단 따뜻한 차부터 내어 올까요?”

구양씨 삼 형제가 저마다 말을 건넸지만 철류흔은 듣는 둥 마는 둥 무표정하게 손짓을 보냈다.

“착석.”

그러자 구양씨 삼 형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에 앉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협무극을 통해 철류흔의 언행이 이전과 사뭇 다르단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예상한 것보다 더 생경했기 때문이다.

“장로는?”

철류흔이 좌중을 눈으로 훑으며 묻자 협무극이 대표로 답했다.

“아시다시피 지병 때문에…… 실은 요 몇 달 사이 건강이 더 나빠지셨습니다.”

“그래. 바쁘니 본론부터.”

철류흔은 냉큼 종이 한 장을 꺼내 놓았다.

그것은 을사적이 핏물로 쓴 자술서였다.

“놈이 직접 작성한 거야. 모든 내막이 적혀 있지. 일단 사부님의 서거와 이번 일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기적으로 공교롭게 겹쳤을 뿐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신빙성은 있습니까? 워낙 못 미더운 녀석이라…….”

“내용 자체는 사실이다. 장담하건대 나를 속일 수는 없어.”

신검이던 자신은 긴 세월 동안 무수한 군상을 접했고, 여러 유형의 변절자가 획책한 음모적 상황들 또한 숱하게 겪었다.

그중엔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간교하고 치밀하게 흉계를 실행하던 자도 많았다.

즉 그러한 부류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오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하수에 불과한 을사적의 속내를 헤아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글을 읽어 보기 전에 요점을 간단하게 짚어 주지.”

“예, 소문주님.”

“음해 공작의 배후는 천사방의 뱀 대가리다.”

순간 간부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다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백사두검 굴마훈’이란 별호와 성명을 떠올린 것이다.

“현재 본 문은 재물도, 영약도 다 부족하다. 그럼 놈이 탐낼 만한 게 뭐겠어?”

철류흔의 물음과 동시에 협무극이 짧게 외쳤다.

“아! 백악검결(白嶽劍訣)!”

“맞아.”

백악검결은 사문을 대표하는 검학이자 초대 문주의 위대한 진전이 아닌가.

흑막인 굴마훈의 궁극적인 의도는 명약관화했다.

상승 검학인 백악검결을 이용해 자신의 공부를 보완하고 또 발전시켜 한 단계 위의 강자로 발돋움하기 위함이다.

무릇 무공의 새로운 요체를 얻는 데에 있어서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의 걸 훔쳐 응용하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백악검문만큼 노리기 좋은 표적이 또 없잖은가.

“예의 비급 때문에 을가 놈을 은밀히 포섭하여 차대 문주 직에 앉히려 한 거지.”

“그래서 유력 후보인 소문주님께 미리 수작을…… 으음, 저희의 의심을 피하고자 일부러 날짜를 길게 잡고 진행한 것이었군요. 급히 먹는 밥이 체하기 마련이니…….”

“뭐, 결과적으로 내겐 다행한 일이었지. 여하간 열흘 뒤에 모든 걸 정리하고 또 해결할 생각이다.”

협무극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혹 천사방을 방문해 그와 대면하실 참입니까?”

“내가 왜?”

“예?”

“어차피 놈이 알아서 이곳으로 올 텐데.”

“그게 무슨…….”

“나중에 알게 돼. 너희는 그저 날 믿고 시키는 것만 잘 이행해.”

그런 다음 품속을 뒤져 뭔가 꺼내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체술 연마 자세를 연상시키는 그림과 글이 있는 일종의 도해(圖解)였다.

“새로운 육신 단련법이다. 다들 부지런히 실행해 봐. 나중에 적절한 보상이 있을 테니까.”

찰나 문 너머로부터 한 문도의 음성이 들리고.

“소문주님, 정문 밖에 말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출발해 볼까.”

철류흔이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우자 협무극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엇, 바로 떠나십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사정을 알고 있는 협무극은 그런 철류흔의 선택에 더 토를 달지 않았다.

반면 영문을 모르는 구양천 등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 갑자기 어딜 가십니까?”

“설마 홀로 출타하시겠단 말씀입니까?”

하지만 철류흔은 시큰둥하게 걸음을 옮겼다.

“잔말 말고 내가 귀환할 때까지 총감 지시나 잘 따르도록 해.”

“소문주님, 하오나 회복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당장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한 가지다.”

“…….”

“차후 뱀 대가리 놈의 가죽을 어떤 식으로 벗겨야 잘 벗겼다고 소문이 날까, 바로 그것이지.”

그렇게 철류흔이 문을 닫고 사라지자 구양씨 삼 형제는 멍한 시선을 던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기요, 뱀 대가리한테 도로 살가죽이 홀랑 벗겨지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한편 협무극은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증표인 듯이.

―탈태환골 한 번조차 못 하면 무인도 아니지.

확신이 없다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말.

‘소문주님, 아무쪼록 무운(武運)을 빌며……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 * *

백악검문의 정문 밖.

말 등에 오른 철류흔은 고삐를 잡으며 씩 웃었다.

‘복수를 위한 첫걸음인가.’

백악검문엔 앞으로 자신의 믿음직스러운 수족이 되어 줄 인원이 있다.

그렇지만 쇠락한 탓에 환경적으로 부족한 것이 많다.

하나.

지금부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바꿀 것이다.

장차 그 어떤 강대한 세력이 쳐들어와도 너끈히 버틸 수 있도록 빠르게…….

그래야 자신도 보다 안정적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

‘까짓거 구성원 전부를 수준급 검수로 성장시키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이지.’

낭인은 분명히 모를 것이다.

신검이던 자신이 백악검문의 소문주로 환생한 사실을.

이는 큰 이점이자 상대에겐 큰 변수나 다름없다.

‘네 행적을 반드시 알아내겠다. 정 안 되면 천하 무림을 통일해서라도.’

의욕을 불태운 철류흔이 이내 발로 말 옆구리를 툭! 찼다.

“이랴.”

동시에 말이 바람처럼 네굽을 안고 질주하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두두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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